AI에게 "개발자는 대체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해보았다.

개발자가 대체되지 않기를 바라며 AI에게 "개발자는 대체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나는 반대 의견으로 토론하며 내가 지길 바랬다. 그리고 개발자들의 미래가 괜찮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승리하면서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진실을 숨기기에는 현실의 데이터가 너무 명확했다. 빅테크의 대규모 해고, 신입 채용 급감, AI 인프라에 쏠리는 자본, AI도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AI에게는 반대편에 서달라고 했다. AI가 공격하고 내가 방어하는 구도. 내가 했던 공격을 그대로 다시 방어해야되는 불리한 토론이였지만,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다.

 

나의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AI

AI는 자비가 없었다. 내가 대체론에서 밀어붙였던 핵심 논거들을 그대로 다시 가져와 나를 공격했다. 개발자의 업무 70-80%는 이미 자동화 가능하고, IT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며, 주니어 파이프라인이 무너지면 직군 자체가 소멸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내가 했던 말이였는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버블론을 꺼냈다. IT 버블 시기에 이미 충분함 이상의 엔지니어가 시장에 쏟아졌고, 지금의 채용 한파는 AI 대체가 아니라 그 과잉 공급의 파장이라고 반박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항상 십 년 주기로 폭발적 성장과 조정을 반복해왔다.

닷컴 버블, 모바일 혁명, 클라우드 전환까지 매번 "개발자가 끝났다"는 말이 나왔고, 매번 틀렸다. 지금도 그 사이클의 저점에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AI는 데이터로 반격했다. 과거 버블 이후에는 채용 지표가 점진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지금은 회복 없이 횡보하고 있다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이전보다 더 활발해졌고, 비개발자가 AI를 활용해 직접 개발에 뛰어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진입 경로가 사라진 게 아니라 바뀐 것이다. 정규 채용이라는 좁은 문이 닫히는 동안, 오픈소스와 AI 도구라는 더 넓은 문이 열리고 있다고 토로하였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나의 논리

 

 

AI는 그대로 나의 공격을 다시 자신의 주장으로 바꾸며 공격했다. 비개발자가 AI로 직접 개발할 수 있다는 건, 전문 개발자의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뜻 아니냐고. 모두가 키보드를 치게 되면서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이 사라진 것처럼, 개발이 보편화되면 "개발자"라는 전문직도 소멸하는 거 아니냐고. 내 반박이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논리였기에 그래서 나는 바로 프레임을 바꿨다. 비개발자가 개발을 하게 된다는 건 대체가 아니라 융합이라고. 의료 지식을 가진 개발자, 법적 전문성을 갖춘 개발자 등 도메인 전문가가 개발 능력을 겸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업 도메인을 학습하면서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개발자는 이전부터 존재했었고 지금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거라고 개발자라는 직군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경계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방대한 레거시라는 이름의 방패

 

AI는 다시 반격했다. "정의를 계속 확장하면 어떤 직업도 대체될 수 없다"고. 오케스트레이터, 도메인 전문가, 아키텍터 등의 직업을 이야기하며 내가 방어할 때마다 개발자의 정의를 넓혀가고 있었고, AI는 그걸 정확히 분석했다. 이건 존속의 증거가 아니라 소멸의 포장이라고.

나는 내 주장으로 인해 계속 밀리고 있었다.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레거시 시스템이었다. 아직 대부분의 기업은 내부 레거시를 개편하지 못하고 있다. 리스크가 너무 크고 많은 인력 리소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이 초격차는 결국 기업들을 전환으로 내몰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에는 개발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경량 AI 모델이 여러 하드웨어에 탑재되고, 로봇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소프트웨어가 침투할 영역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막다른 절벽까지 몰리는 수세

하지만 AI는 여기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레거시 전환은 단기적일 뿐이고, 전환이 끝나면 그 인력은 필요 없다고. 새로운 하드웨어 영역의 엔지니어는 기존 "개발자"와는 다른 직군이라고. 결국 모든 반박이 같은 결론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새로운 역할은 생기지만, 그게 지금의 "개발자"를 살려주지는 않는다.

수세에 몰린 나는 고령화로 새롭게 주장을 펼쳤다. 젊은 인구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순수 인간의 노동력만으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AI와 자동화에 미친 듯이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지금의 채용 한파는 그 투자가 과열된 과도기일 뿐이라고. 몇 년이 지나면 균형이 맞춰질 거라고 주장했다.

AI의 반격은 냉정했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돌봄, 의료, 물류 같은 물리적 영역의 문제이지, 개발자 고용을 보전해주는 근거가 아니라고. 그리고 AI 투자의 목적 자체가 인력 비용 절감인데, 투자가 성공할수록 인력 수요는 줄어들지 늘어나지 않는다고.

 

 

AI는 원하지 않는다

 

불리한 상황 속에 나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AI는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AI도 "이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스스로 결심하지 않는다. 시키면 하고, 시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이게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고, 그 느낌을 기술로 구체화하는 사람이 개발자다. 의지 없는 도구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나는 이걸 만들고 싶다", "이걸 개선하고 싶다"라는 욕구를 만들 수 없었고 AI의 성능 향상으로 도달하는 영역이 아니였다. 계산기에 아무리 강력한 연산 능력을 있어도, 계산기가 "이 방정식을 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과 의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

AI는 이 논거에 완전히 반박하지 못했다. "의지는 경영자나 PM에게 있으면 되지, 개발자에게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우회했지만, 나는 받아쳤다. "이런 서비스를 만들자"는 비즈니스 의지와 "이 시스템은 이렇게 설계해야 한다"는 기술적 의지는 다르다고.

같은 선택이라도 결과는 달라진다. 같은 문제를 정의하더라도 각 조직의 조건과 환경이 다르고, 그때의 시장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세상에서, 매 순간 달라지는 수천 개의 변수를 고려하여 기술적 선택을 내리는 건 PM도, 경영자도, AI도 할 수 없다. 그 선택을 하려면 의지가 필요하고, 그런 기술적 의지를 가진 사람이 바로 개발자라고.

 

99%가 놓치는 1%

처음으로 AI가 반격하지 못하는 논리를 제시하였다.

AI가 만든 99%의 정확도가 처음에는 좋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더 치명적일 수 있다.

iPhone 출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는 "iPhone이 의미 있는 시장 점유율을 가질 가능성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웃었다. 데이터와 시장 분석만 보면 물리 키보드가 없는 비싼 스마트폰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데이터가 아니라 직관과 비전으로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모바일 산업 전체를 재정의했습니다.

인간은 감정적이다. 확률적으로 불리한 선택을 하고, 데이터가 말리는 방향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큰 기술 발전은 바로 그런 비합리적 선택에서 나왔다. AI는 최적해를 찾지만, 인간은 최적해 바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기술과 사람 사이에 서있는 사람, 개발자

토론을 마치고 든 생각이 모든 시스템이 AI에 의존하는 세상일수록, AI가 보지 못하는 영역까지 바라보며 감독하고 개입할 수 있는 인간의 필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는 절대 완성 시킬 수 없다. 배포 이후에도 사용자의 니즈가 변하고, 규제가 바뀌고, 경쟁사가 움직인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를 풀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고 대다수를 만족 시키는 것이 만드시 정답은 아니다.

AI는 계속해서 감독도 자동화될 수 있다고, 가치 판단도 입력할 수 있다고, 환경 변화에 AI가 더 빠르게 적응한다고 이야기 하였지만 나의 프레임을 완전히 깨지는 못했다. 모든 반박의 끝에는 결국 "누군가가 시켜야 한다"가 남았고, 그 "누군가"가 기술과 사람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게 개발자라고 이야기를 하며 토론을 마무리 하였다.

 

코드 너머의 역할

긴 시간동안 토론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결국 양쪽 모두 같은 미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AI가 대부분의 개발 업무를 수행하게 되고, 소수의 엔지니어만 남고, 개발이라는 행위는 보편화된다. 서로의 관점에 따라 그걸 "대체"라고 부르느냐, "진화"라고 부르느냐였을 뿐.
이미 이 미래를 실현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팔란티어이다. 팔란티어는 20여 년 전부터 FDE(Forward Deployed Engineer)라는 직군을 만들어 엔지니어를 고객사 현장에 직접 파견해왔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코드만 짜는 개발자가 아니다. 제조, 의료, 금융, 국방 등 복잡한 산업 현장에 실제로 투입되어 6개월에서 1년간 그 조직의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로 해결한다.

기술자이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올해 FDE 채용 공고는 800% 이상 급증했고, 오픈AI, 앤트로픽 등 주요 AI 기업들도 이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것이 내가 토론을 통해 도달한 결론과 같다. 개발자는 코드를 짜고 기술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다. 디지털 세계의 문제는 AI를 통해 점점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개발자에게 중요한 건 현실 세계를 마주보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문제를 정의하는 것 그리고 이 문제를 기술을 통해 유연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 그게 앞으로 개발자의 핵심 역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