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이직했지만 퇴사를 선택한 이유
4월 1일,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서 수습 기간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사정이 있어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업무를 지속하며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회사에서 계속되는 불안감을 안고 일한다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수습 기간을 자발적으로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뭘 해야하지?
힘들게 준비한 이직이었는데, 잘못된 회사를 선택한 탓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 허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이없기도 했고, 다음 계획을 세울 힘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다음 이직을 준비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쉬었다고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꿔 나만의 유의미한 휴식 계획을 세워 실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퇴사 후, '유의미한 휴식'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생각해보니,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들은 오히려 불안과 후회를 남겼습니다. 반면 무언가에 도전하고 난 뒤의 휴식, 책 한 권을 깊이 읽고 난 뒤의 사색, 좋은 영화를 보고 느낀 감동의 여운과 같은 순간들이 진짜 휴식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휴식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성장'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번 휴식 기간을 이렇게 설계하였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 템플스테이를 통한 디지털 디톡스와 명상
-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다시 읽으며 나의 성장 궤적 추적하기
새로운 자극과 연결
- 평소 시도해보지 않았던 취미 활동 도전
-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깊은 대화 나누기
성찰과 준비
-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 설정
작은 계획들을 하나씩 실행해가며,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재충전'과 '재정비'의 시간을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이 시간이 다음 도약을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일단 이직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에너지 충전하기
테크포임팩트 활동 - 팬파인더 CBT 진행
삶에서 몰입 상태로 들어가 무언가에 극도로 집중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순간입니다. 테크포임팩트는 IT 직군 종사자들이 비영리 단체나 기업에 재능을 기부하는 활동인데, 이를 통해 비영리 기업들이 풀고자 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는 팬파인더 CBT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해커톤을 진행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팀원들과 모여 밤을 새우며 코드를 짜고, 테스트를 반복했죠. CBT 전날에는 새벽 4시까지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가능한 모든 엣지 케이스를 대비했습니다.
CBT 당일,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고객사 정보를 수기로 등록하던 중 AI 서버에 갑작스러운 부하가 걸렸고, 일부 사용자들이 서비스 사용에 문제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팀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신속하게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한 명은 로그 분석을, 다른 한 명은 고객 응대를, 저는 장애 대응 방안을 준비했습니다. 마치 전쟁터 같았지만, 그 긴박한 순간 속에서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느낀 몰입의 즐거움. 퇴사 후 잿더미처럼 식어있던 마음에 다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벽의 피로도, 예상치 못한 장애도 오히려 저를 살아있게 만들었습니다.
CBT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팀원들과 함께 환호하던 그 순간,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이거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단순히 기술적 성취감을 넘어, 제가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템플스테이: 노트북 대신 책 한 권
평소 노트북과 한 몸처럼 지내던 저는 템플스테이에 갈 때 큰 결심을 했습니다. 노트북을 집에 두고, 『생각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책 한 권만 들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용문사에서 보낸 1박 2일. 오후엔 산책하고, 저녁엔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디지털 기기 없이 보내는 시간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제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걱정했던 일들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설령 일어났어도 어떻게든 해결해왔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나도 그때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닿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이미 일어난 일에 스트레스받으면서, 정작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확실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이 정도면 괜찮은 삶 아닌가?' 하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AI와 함께하는 커리어 로드맵 계획
얼어버린 IT 투자 시장, 빠르게 발전하는 AI, 대기업들의 연이은 구조조정 소식을 접하면서 개발자로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특히 Cursor와 Claude Code 같은 AI 도구들이 코드를 생성하고, 디버깅을 도와주며, 심지어 시스템 설계까지 제안하는 것을 보면서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코딩 실력이 뛰어나거나 시스템을 잘 설계하는 것만으로는 기업 입장에서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코딩하는 능력이 10년 뒤에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AI와 내가 어떻게 공생하며 나만의 강점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독서, 세미나, 스터디로는 쌓을 수 없는 실무 경험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기술력을 쌓는 것을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들에 집중했습니다. 개발자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IT 시장은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가지고 ChatGPT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AI의 한계를 사람의 경험으로 극복하기
모두가 알다시피 AI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답이 없는 커리어 설계와 같은 문제에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개인의 상황과 맥락을 깊이 이해하기 어렵고, 실제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을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AI가 제시한 방향성을 실제 사람들의 경험과 조언으로 검증하고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관점을 얻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습니다.
AI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만남들:
- 동료 개발자들과의 커피챗: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들과 현재 시장 상황과 기술 트렌드에 대해 논의
- 이직 준비 중인 개발자와의 대화: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과 전략 공유
- 전문 커리어 멘토링: 유료 멘토링 서비스를 통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커리어 방향성 조언
- 헤드헌터의 시장 분석: 커리어 컨설턴트와 헤드헌터로부터 현재 채용 시장의 실제 수요와 이력서 피드백
이러한 만남들을 통해 AI가 놓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얻을 수 있었고, 보다 균형 잡힌 커리어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연차보다 경험이 중요해진 시장
급변하는 채용 시장의 현실
최근 채용 시장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놀라운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 주니어 채용 공고: 2년 새 40-50% 감소
- 시니어 채용 비율: 전체 채용의 60% 이상 차지
- 2025년 기업 채용 계획: 경력직 채용이 신입 대비 1.6배 선호
최근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IT 시장에 경력 있는 인력이 대거 나오게 되었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기업들은 같은 비용으로 더 숙련된 엔지니어를 채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어떤 강점을 어필해야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기
기업이 내부 추천 채용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채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사람'을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직원이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것은 자신의 평판을 거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충분한 가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천받은 사람도 이런 무게를 알기에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반면 외부 채용은 제한적입니다. 서류, 면접, 기술 테스트만으로는 지원자의 실제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채용 담당자들은 레퍼런스 체크를 하고, 링크드인이나 블로그를 통해 지원자의 활동을 살펴봅니다.
만약 제가 채용 담당자라면, 단순히 이력서만 제출한 사람보다는 블로그, 링크드인, 깃허브 등을 통해 꾸준히 활동하며 자신의 성장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불확실한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 기록 남기기 (보이지 않는 성장을 보이게 만들기)
- 기록의 가치: 수많은 책을 읽고 여러 활동을 하더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타인의 입장에서는 이력서 한 줄의 문장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 기록을 쓴다는 건 단순히 알게 된 지식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정리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보다는 "이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고, 이럴 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와 같이 'Why'를 생각하고 정리하면 좋습니다.
-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글로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개념이나 지식이라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100개의 문장보다 하나의 그림이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하기(불특정 다수에게 피드백을 받아보기)
- 적극적인 공유의 중요성: 기록을 남기더라도 정보의 바다 속에서 내 글이 주목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커뮤니티, SNS, 메신저 등을 통해 공유하며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 피드백을 대하는 자세: 표현하면서 받게 되는 피드백을 부족함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다양한 피드백의 가치: 저는 최대한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어떤 피드백이 가치 있는지 판단할 수 있고,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건설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기(경험을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기)
- 스토리텔링 능력의 중요성: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과 경험을 잘 정리하여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에 따라 필요한 정보만을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고,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기억의 한계 극복하기: 한 달만 지나도 내가 기록했던 세부적인 경험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영화처럼 전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조각들이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합니다.
- 핵심 위주의 커뮤니케이션: 수십 장에 달하는 내용을 모두 전달하기보다는 핵심만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편하게 의견을 줄 수 있고, 세부사항보다 큰 그림에 집중하여 더 가치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경력(경험) 설계하기
- 실무 경험의 절대적 가치: 이번 채용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실무를 대체할 수 있는 경험이나 프로젝트는 없다는 것입니다.
- 면접의 현실: 커뮤니티 활동, 사이드 프로젝트, 블로그 글 등이 서류 전형이나 자기소개에는 도움이 되지만, 면접에서는 결국 실무 경험이 중심이 되어 진행됩니다.
- 이상과 현실의 간극: 개인의 커리어 방향과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이 일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런 조건을 갖춘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전략적 선택의 필요성: 때로는 추가 업무를 감수하거나 처우를 낮추더라도 원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환경으로 이동하는 선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실패를 통한 성장: 성공적인 로켓 발사를 위해 수십, 수백 번의 테스트를 거치듯이, 우리의 커리어도 실패를 통해 배우고 보완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나의 성장 과정: 저 역시 커리어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정리하면서
여러 콘텐츠와 미디어에서는 AI가 개발자를 대체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개발자야말로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면서 많은 것들을 자동화하고 대체해온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AI 발전 속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오히려 이것이 개발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개발자는 누구보다 가깝게 AI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직종입니다. 현재 AI는 코드 작성과 문서 작성이라는 제한적인 영역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제 정의, 트레이드오프를 고려한 의사결정, 시스템 유지보수,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도메인 설계,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 등 개발자의 핵심 업무에서는 아직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AI가 이런 영역까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개발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이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AI와 가장 가까이 있는 개발자야말로 새로운 역할로 가장 빠르게 전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현재의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이기에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에는 취약합니다. 개발 생태계는 오픈소스를 통해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과 개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변화의 파도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파도와 부딪히면서 그 파도를 타고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뮤니티의 영향력으로 바뀐 나의 삶과 철학에 대하여 (0) | 2025.03.30 |
---|---|
다사다난 했던 2024년을 보내며...(부제: 제어할 수 없는 인생) (8) | 2025.01.05 |
나를 그려가는 10가지 물음과 앞으로의 그림들 (16) | 2024.10.12 |
혹한기 이직 시장에서 헤딩 해본 후기(+ 분석)와 면접 복기 (7) | 2024.08.19 |
채용 한파 속 이직 시장에서 살아남기 (개발자 편) (2) | 2024.08.10 |